만화책이랑

나나 4

2008. 5. 28. 10:37

 

나나의 눈동자는 탁하지 않으니까---

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런 거리보다,

새하얀 설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난 사실은 굉장히 계산적이라서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은 채 쇼우지를 기다리고 있을 만큼--- 더 이상 순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순수한 척했다.

나나한테 미움 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런 건 거짓말이야. 뭔가 잘못된 거라구.

쇼우지가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어.

하치! 왜 그렇게 보고만 있는 거야.

네 일이잖아! 네가 하라구!

싸우지 않으면 지는 거야.

네 남자잖아!

빼앗아 와!

 

다음 날, 나는 마치 병자처럼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다른 무언가에 정신을 분산시키고 싶었는데---

아무 것도 할 마음이 안 생겨서--- 몇 번이고 쇼우지의 꿈을 꿨다.

 

트랩네스트의 라이브 티켓!

2장 얻으면 같이 갈래?

나나,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살아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기는구나.

제일 앞자리야---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무렵의 난 마치 뭔가 어긋나던 일상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로 운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것은

신이

나나를 위해 준비해둔

티켓이었던 거야---

 

나나가 있으면 난 외롭지 않아.

같은 여자니까

이상한 감정 같은 거 없이 끝나고,

묘한 질투 같은 거 안 해도 되고---

안심하고 계속 지낼 수 있잖아.

그에 비하면 사랑은---

피곤하고, 상처받고, 소모적이야.

이젠 지겨워.

내가 원하는 건 남자친구가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기사라구.

하지만 현실적으론 그런 남자가---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어.

 

오늘은 나나의 첫 라이브!

지면이 흔들린다.

두 발로 딛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혼자만이 남게 된다.

나나는 그런 노래만 부르고 있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그건 바로 내 심정이라구.

멀리 가지 말아 줘, 나나.

 

다들 내가 있을 곳을 앗아가지 말아줘!

이 애를 또 여기서 재울 작정이야?

여긴 내 집이기도 하니까--- 네 멋대로만 굴지 말라구, 나나!

 

그때--- 틀림없이 나나는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꾸지람 들은 아이 같은 얼굴을 했다.

돌이킬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때 내가 조금 더 어른스러워서 나나의 연약함을 깨달았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미래가 펼쳐졌겠지?

그날 밤,

유리의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이 나간 나나는

그대로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나나의 팔에 새겨진 연꽃 문신.

그거 연꽃이지?

아니, 렌.

 

세상에--- 트랩네스트의 렌이---

블래스트의 원래 베이스였다.

하지만 왜?

나나도, 야스도, 노부도

지금까지 그런 얘길 한 마디도 안 한 거지?

게다가 나나의 팔에--- 그 문신이 렌을 나타내는 거라면,

나나와 렌은

연인 사이---인 거야.

미치도록 잘 어울려!

넘 멋지잖아! 어쩌면 좋아~

 

이제 라이브에 가자고 생떼 쓰는 것도 그만 두자.

신중하게, 하지만 티 안 나게, 렌의 얘기를 화제로 올려보자구.

라이브가 끝난 다음에 물어 볼까?

감동의 재회!

그후, 라이브까지 2주 남짓.

나나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내 망상은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라이브 날 아침.

나나는 평소와 전혀 다름없는 모양으로 창가에 앉아 있었지.

하지만 평소하곤 다른 향이 났어.

신한테 압수한 담배.

안 받는다던 블랙스톤의 향이---

그때까지 눈치 채지 못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질 정도로

예를 들면, 피어스의 숫자부터 말투까지,

나나와 렌은 너무도 많이 닮아 있어서--- 두 사람의 역사에 대한 무게를 느꼈다.

 

가까워져 간다--- 나나와 렌의 거리가--- 점점---

 

정말 뭐든 얘기해 주는 거지?

절대로 속이지 않는 거지?

응.

지금도 렌을 좋아해?

알고--- 있었구나---

미안. 모르는 척 해서--- 그치만---

알고서--- 나를--- 데리고 와 준 거구나. 고마워.

 

나나는 결국,

내 질문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건 안 들어도 알아.

좋아한다는 말을

쉽게 입에 담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감정이라면

예전에 만나러 갔을 거라는 걸.

 

기타의 바로 앞.

최고의 자리야, 나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대가 가까워.

어떡해. 왠지 울어버릴 것 같아.

 

렌의 등장.

그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감동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훗날, 나나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 행복이길---

그날 밤 수없이 빌었건만---

 

뭐야--- 나, 지금 울고 있는 건가?

하지만 왠지--- 가슴이 북받쳐.

 

나나.

그때,

나도 모르는 새 잡고 있던 그 손을

사실은

계속 놓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