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 4
나나의 눈동자는 탁하지 않으니까---
별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런 거리보다,
새하얀 설원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난 사실은 굉장히 계산적이라서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은 채 쇼우지를 기다리고 있을 만큼--- 더 이상 순수하지 않았다.
하지만 순수한 척했다.
나나한테 미움 받고 싶지 않았으니까.
이런 건 거짓말이야. 뭔가 잘못된 거라구.
쇼우지가 이런 짓을 할 리가 없어.
하치! 왜 그렇게 보고만 있는 거야.
네 일이잖아! 네가 하라구!
싸우지 않으면 지는 거야.
네 남자잖아!
빼앗아 와!
다음 날, 나는 마치 병자처럼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게--- 다른 무언가에 정신을 분산시키고 싶었는데---
아무 것도 할 마음이 안 생겨서--- 몇 번이고 쇼우지의 꿈을 꿨다.
트랩네스트의 라이브 티켓!
2장 얻으면 같이 갈래?
나나, 아무리 괴로운 일이 있어도 살아 있으면--- 좋은 일이 생기는구나.
제일 앞자리야---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무렵의 난 마치 뭔가 어긋나던 일상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로 운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것은
신이
나나를 위해 준비해둔
티켓이었던 거야---
나나가 있으면 난 외롭지 않아.
같은 여자니까
이상한 감정 같은 거 없이 끝나고,
묘한 질투 같은 거 안 해도 되고---
안심하고 계속 지낼 수 있잖아.
그에 비하면 사랑은---
피곤하고, 상처받고, 소모적이야.
이젠 지겨워.
내가 원하는 건 남자친구가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기사라구.
하지만 현실적으론 그런 남자가--- 없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어.
오늘은 나나의 첫 라이브!
지면이 흔들린다.
두 발로 딛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혼자만이 남게 된다.
나나는 그런 노래만 부르고 있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그건 바로 내 심정이라구.
멀리 가지 말아 줘, 나나.
다들 내가 있을 곳을 앗아가지 말아줘!
이 애를 또 여기서 재울 작정이야?
여긴 내 집이기도 하니까--- 네 멋대로만 굴지 말라구, 나나!
그때--- 틀림없이 나나는 화를 낼 거라고 생각했는데---
꾸지람 들은 아이 같은 얼굴을 했다.
돌이킬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그때 내가 조금 더 어른스러워서 나나의 연약함을 깨달았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미래가 펼쳐졌겠지?
그날 밤,
유리의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이 나간 나나는
그대로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나나의 팔에 새겨진 연꽃 문신.
그거 연꽃이지?
아니, 렌.
세상에--- 트랩네스트의 렌이---
블래스트의 원래 베이스였다.
하지만 왜?
나나도, 야스도, 노부도
지금까지 그런 얘길 한 마디도 안 한 거지?
게다가 나나의 팔에--- 그 문신이 렌을 나타내는 거라면,
나나와 렌은
연인 사이---인 거야.
미치도록 잘 어울려!
넘 멋지잖아! 어쩌면 좋아~
이제 라이브에 가자고 생떼 쓰는 것도 그만 두자.
신중하게, 하지만 티 안 나게, 렌의 얘기를 화제로 올려보자구.
라이브가 끝난 다음에 물어 볼까?
감동의 재회!
그후, 라이브까지 2주 남짓.
나나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내 망상은 점점 더 커져만 갔습니다.
라이브 날 아침.
나나는 평소와 전혀 다름없는 모양으로 창가에 앉아 있었지.
하지만 평소하곤 다른 향이 났어.
신한테 압수한 담배.
안 받는다던 블랙스톤의 향이---
그때까지 눈치 채지 못했던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질 정도로
예를 들면, 피어스의 숫자부터 말투까지,
나나와 렌은 너무도 많이 닮아 있어서--- 두 사람의 역사에 대한 무게를 느꼈다.
가까워져 간다--- 나나와 렌의 거리가--- 점점---
정말 뭐든 얘기해 주는 거지?
절대로 속이지 않는 거지?
응.
지금도 렌을 좋아해?
알고--- 있었구나---
미안. 모르는 척 해서--- 그치만---
알고서--- 나를--- 데리고 와 준 거구나. 고마워.
나나는 결국,
내 질문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건 안 들어도 알아.
좋아한다는 말을
쉽게 입에 담을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감정이라면
예전에 만나러 갔을 거라는 걸.
기타의 바로 앞.
최고의 자리야, 나나---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무대가 가까워.
어떡해. 왠지 울어버릴 것 같아.
렌의 등장.
그 순간,
숨이 멎을 것 같은 감동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훗날, 나나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 행복이길---
그날 밤 수없이 빌었건만---
뭐야--- 나, 지금 울고 있는 건가?
하지만 왠지--- 가슴이 북받쳐.
나나.
그때,
나도 모르는 새 잡고 있던 그 손을
사실은
계속 놓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