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1
<고마츠 나나 이야기>
내가 태어나 고향은---
산으로 둘러싸인 크지도 작지도 않은 마을로---
산골짝도 아니지만, 도회지도 아니어서 관광으로 와도 볼거리가 없다.
나는 3자매 중 가운데로---
부자도, 가난뱅이도 아닌 부모님께 방치되어 저 혼자 쑥쑥 자라서---
현 내에 있는 평범한 여학교를 이제 곧 졸업한다.
돌이켜보면, 저의 고교시절은 사랑으로 시작해, 사랑으로 끝났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저는 이번 봄부터 친구인 쥰과 이곳의 미술학교에 다닐 예정입니다.
미술학교는 공학이라서, 멋진 만남을 기대하며 젖먹던 힘까지 다해 파이팅하겠습니다.
나, 고마츠 나나는 눈동자도 예쁘고, 웃는 얼굴도 멋진 엔도 쇼우지에게 반해버렸다.
해피캠퍼스 라이프의 서막이 드디어 올랐단다, 쥰. 부탁해.
쇼우지는 굉장히 좋은 녀석이니까, 연인에겐 틀림없이 진실할 거라도 생각해.
그 녀석이라면 널 소중히 여겨줄 거야. 내가 보증할게.
하지만 쇼우지는 소중한 '남자친구'잖아. 애인 따위로 삼기엔 너무 아깝단 말야.
도대체 난 너한테 뭐야?
울 것 같은 얼굴로 싱숭생숭한 말이나 해서 남의 마음으로 휘저어 놓는 게 재밌어?
넌 결국 너 편할대로 기댈 수 있는 남자를 옆에 두고 싶은 것 뿐이잖아.
뭐가 남녀 간의 우정이야? 웃기지 말라 그래!
늘 다정하게 곁에 있어주던 쇼우지가 버럭 화를 낸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사실은 처음 본 순간부터 괜찮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난 그때 상처투성이였기 때문에, 피해망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상처투성이였기 때문에
닿기만 해도 상처가 벌어질 것만 같아서 줄곧 겁냈던 거야.
행복한 사랑을 하고 싶었어.
하지만 남자는 전부 믿을 수가 없어.
그래도 쇼우지는 달랐지.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나한텐 달랐어.
쇼우지랑 있으면 늘 치유받고 있는 것 같았다구.
쇼우지는 날 마음으로 살며시 안아주고 있었던 거야.
지금 그 온기로--- 있는 힘껏 날 안아줘.
행복한 사랑을 하고 싶었다.
영화처럼 로맨틱하고, 드라마틱한 사랑---
하지만 17세의 여름, 처음으로 여자가 되고 나서---
남자란 그렇게 달콤한 존재가 아니란 걸 알게됐다.
그런 줄 알았는데---
고마츠 나나.
방년 19세.
현재 그이와 원거리 연애 중.
두고 보라구, 대마왕!
<오사키 나나 이야기>
난 내가 태어난 고향을 모른다.
아버지의 얼굴은 본 적도 없고, 어머니의 얼굴도 잊은 지 오래다.
네 살 되던 해, 이곳 바닷가 마을에 와서---
작은 음식점을 하는 할머니한테 죽어라 싫은 소리만 들어가며 자랐고,
지금은 아르바이트로 연명을 해 가며
꿈을 키워 나가고 있다.
내가 퇴학 당한 뒤, 그 소식을 들은 할머니는 충격으로 몸져 누웠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코트 속에 빨간색을 감추고--- 눈보라 속을 뛰었다.
친구인 노부가 나 같은 문제아를 포용해줄만한 사람을 소개시켜준다고 했다.
프로뮤지션을 꿈꾸는 기타리스트, 렌.
간단히 무시해버렸다.
하지만 스테이지에 나타난 그 남자한테--- 난 눈을 뗄 수 없게 돼버렸다.
그날 밤 태어난 감정을---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사랑이라든가 두근거림, 달콤한 반항 같은 건 적절하지 않아.
질투가 섞인 선망과--- 초조함.
그리고 욕정--- 지금도 이따금씩 불안해진다.
렌과 두 번째 만난 건--- 갯바람이 살갗을 휘감는, 한여름 날의 오후였다.
그 날부터 난--- 렌이 내뿜는 인력으로 인해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와 같았다.
가슴이 파도친다.
높이--- 높이, 높이---
넘치는 정념이 소리가 된다.
나와 렌이 맺어진 건, 만난 지 딱 1년째 되는 크리스마스 밤이었다.
죽어도 좋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난 렌을 갖고 싶어서--- 너무도, 너무도 갖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그날 이후 줄곧--- 곧바로 같이 살기 시작했다.
렌은 내게 노래하는 기쁨을 줬고, 기타를 가르쳐 줬고, 살아가는 희망을 부여해 줬다.
하지만 난 렌을 위해 뭘 해 줄 수 있을까?
렌과 사는 일상들이 모두 꿈속에서 벌어지는 일 같아.
그때까지 비굴하게 살아오던 내게 렌은 너무 눈부셔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닿을 수 없을 것 같다.
나나--- 나, 도쿄에 간다.
넌, 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
이대로라면 노래같은 거 부를 수 없게 돼도--- 렌과 함께 도쿄에 가서,
렌을 위해 하다 못해 매일 밥을 짓고, 방을 치우고, 렌의 아이를 낳고---
그렇게밖에 할 수 없을지도 몰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
가족이 없는 우리에게 있어선--- 평온한 가정을 만드는 게,
꿈을 이루는 것보다 더 절실하겠지.
하지만 난 렌을 위해 노래하기로 결심한 게 아냐.
난 나를 위해 오늘까지 노래해 온 거다.
렌과 함께 산 1년하고 3개월,
아직 잔설이 남은 이른 봄에--- 우린 끝났다.
안녕이란 말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헤어져 있는 게
두 사람에게 있어 치명적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전화는 편지 따윈 아무런 의미도 없어.
서로 품에 안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
렌이 말로는 표현 못했던 외로움을,
밤마다 내 안에 토해 내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으니까.
누구보다도 깊이 느끼고 있었는데---
지금도 가끔씩 후회를 한다.
렌이 없는 일상이--- 모두 꿈이길--- 특히나 이런 눈내리는 밤엔.
이렇게 추운 밤엔--- 제발 누군가가,
그 남자를 따스하게 안아 줘.
렌과 헤어지고 난 뒤, 1년 하고 9개월.
이제 곧 두 번째 봄이 온다.
스무 살이 되는 3월에는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선물을 사 주러 가자.
도쿄까지 편도 승차권을 끊어서---
짐은--- 기타와 담배만 있으면 충분해.
렌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