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랑

신사동맹크로스 / 테네무라 아리나

2008. 5. 24. 17:03

 

제 이름은 오토미야 하이네

오늘도 생기발랄한 15세 소녀랍니다!

제가 다니는 사립 제국학원은 엄청 유명한 부자학교예요.

학생들 모두 팔에 찬 완장과 배지에 따라 3랭크로 구분됩니다.

쉽게 말해, 동은 중상층, 은은 대부호, 명문, 구 귀족가문.

그리고 금의 신분을 가질 수 있는 건 단 한 사람, 학생회장, 통칭 황제라고 불리는 토구 시즈마사. 오직 그분 뿐이랍니다.

시즈마사 님, 아시나요?

저는 당신을 사모하고 있어요.

 

왜 그래, 황제폐하?

아아-- 저 애? 어제 그 뱀을 전부 혼자 잡았지?

원래 여깡이었다던데, 알바로 잡일도 하나 봐?

뭐야? 쟤한테 관심 있냐? 거 질투나네.

그건 게 아니야.

눈에 아주 거슬릴 뿐이다.

엥? 그거야말로 관심있다는 거잖아? 쟤 대체 뭔데?

 

혼자 있고 싶었어.

(하지만 시즈마사 님, 혼자 있지 말라는 따뜻한 말을 내게 해준 건 당신이었다고요.)

아!  나를 좋아하면 돼요!

남들이 바라보는 게 신경쓰인다면 나만 바라보면 돼요!

약한 모습 아무한테도 보이기 싫으면 나한테만 보여주세요.

뭐든 상관없어요! 난 시즈마사 님에 대해 알고 싶다고요.

그러니까! 그렇게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한 얼굴 하지 마세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인데요.

내가 깡패 짓을 그만둔 건 당신을 사랑하게 됐기 때문이에요.

강인한 눈동자도 다정한 마음도

참을 수 없이 동경하게 되었죠.

나는 계속 당신처럼 되고 싶었어요.

 

이게 웬 날벼락---

시즈마사 님께 애인이 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어.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남자 애인이었다니!!!

남자가 좋단 말예요?

그래.

 

또--- 또 사고치고 말았어.

이제--- 난 몰라---

난 시즈마사 님의 보디가드인데--- 보디를 가드하는 임무를 맡은 주제에.

왜 그랬어? 무슨 말을 들었기에 그렇게 화를 낸 거야?

목소리가 부드러워--- 내가 화를 내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어주신 거야.

그래도---  죄송합니다. 말하고 싶지 않아요.

알았어. 그래도 다음에 또 이러면 꼭 물어볼거야.

이유를 모르면 제대로 감싸주지 못할 테니까.

역시 시즈마사 님은 너무 좋아---

 

바보---구나.

황제를 사랑하는 건 이제 그만 포기해---

보람도 없을 테니까.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모두 이 사랑을 포기하라고 말한다.

난 잘못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건 나 자신이 결정할 일이잖아?

내가 지켜드려야 돼!

미안해.

이건 분명 내가 평생토록 함께 할 사랑이니까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고 싶어.

 

가슴 아픈 기억이 내게 남겨준 것은, 차갑고 고귀한 보석과도 같은 아픔.

그것이 나만이 가진 자부심.

당신에게만은 언젠가 모두 말해드리고 싶었어요.

 

미안하다. 호모라는 건 거짓말이야.

어째서? 뭣 때문에?

손쉬운 여자방지책이지.

그래! 그랬구나. 천만다행이야!

굳이 남자가 아니어도 됐던 거야--- 그러니까,

남자가 아니어도 괜찮아. 하이네.

 

분명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알면 알수록 더 좋아하게 될 거라고.

괜한 기대는 안 해.

그저 한결같이 당신을 사모할 뿐.

매순간마다 더욱더 당신을 사랑하게 돼.

그러니까--- 가짜 애인이라면 제가 해도 상관없잖아요?

주저리주저리 설득하는 하이네.

맘대로 해.

위장용이지만--- 여전히 짝사랑이지만---

그래도 이건, 일단은 여자애인 탄생이네요.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오토미야 하이네를 제 84대 황제, 토구 시즈마사의 '플라티나'로 삼겠다.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도 같아---

 

시즈는 포기해.

너를 정말 싫어한다고 했으니까.

진게 분해서 하는 소리가 아냐. 정말로.

거짓말이야. 싫어한다면--- 비록 가짜이긴 해도 애인으로 삼을 리 없잖아.

곧 알게 될 거야.

(마구리, 뭔가 알고 있는 거야?)

 

그 아이를 플라티나로 삼다니--- 진심이십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저 놀이일 뿐이야.

제법 진지한 놀이이긴 하지만 말야.

자기 입장을 좀더 생각해보는 게 현명할 것 같군요.

당신은 내가 하는 말에만 따르면 됩니다.

(시즈와 시즈 가문의 집사이자 양호 선생이기도 한 센리가 미묘하게 이끄는 대화)

 

그 후로--- 벌써 10년이군.

제게는 하루하루가 보석 같은 나날입니다.

센리. 이 녀석으로 할래.

평생 나를 따르는 거야. 토야라는 이름 어때?

너뿐이구나. 나에 대해 모든 걸 알면서, 그래도 곁에 있어주는 건---

네.

당신을 이해해주는 사람. 저뿐만이 아닙니다.

당신만을 바라봐주는 사람.

그러니까, 부디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을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하이네를 선택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황제는 완고해서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아.

그래도 만약 믿는다면 생애를 통틀어 그 사람을 의심하진 않을 거야.

 

강하다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왔지만

강한 것은 '토구'라는 가문의 이름이지, 내가 아니야.

모두를 속이고 있는 것 같아서--- 가끔 주목받는 게 숨이 막힐 때가 있어.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데---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데.

 

시즈마사 님은 대단한 분이세요.

엄격함에 가려져 있어서 모를 거라 생각하지만,

당신이 '토구 시즈마사' 이기 위해 견디고 있는 어려움은

너무나 당연해서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아무리 멀리 있어도

당신이 정말로 커다란 존재라는 것을

마음으로 분명 느끼고 있을 거예요.

 

시즈마사 님이 나를 싫어한다는 말, 사실이었어.

하지만 마구리도 나랑 똑같잖아. 똑같잖아---

그분은 인간이라면 전부 다 싫을 테니까! 마구리도 나랑 똑같다구!

그래, 모두 다 싫은 거야.

그리고 누구보다도 토구 시즈마사를.

자기 자신을--- 가장 싫어하시잖아.

맞아--- 나 같은 건 믿어주지도 않아.

가장 싫어하는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했으니까.

 

정말 이상한 남자로군. 너는.

하이네가 거슬리면 이런 귀찮은 짓 하지 말고, 본인한테 직접 말하지 그래?

너하곤 상관없는 일이야.

난 그 녀석이 싫어.

나를 정말로 좋아하지도 않는 주제에.

 

양녀?

오래 전부터 후계자라는 명목으로 네게 부담을 심하게 주었다는 책임을 느끼고 있었다.

앞으로는 네가 자유롭게 날개를 펼 수 있는 곳에서 마음껏 살아보도록 해라.

거짓말!

 

또 '잊을 수 없는 마녀의 노래'를 읽고 있니?

하이네는 그 그림책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네, 왜나면 아버님이 저한테 처음으로 주신 선물인걸요.

황제회에서 받았어.

토구 선배님의 자제분이 그린 거라더군.

아버님이 내게 직접 건네주신 선물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그림책에 담겨있던 다정함.

그 다정함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앞날이 이미 정해져 있어서 나보다 훨씬 힘든 입장이실 텐데,

어쩌면 저리도 밝게 웃으실까.

저는 시즈마사 님을 사랑하게 되었답니다.

 

오랜만이야. 내 얼굴 기억나?

너 대체 뭐야? 누구냐고!

날 그렇게나 좋아한다고 말했으면서.

응? 남한테 그딴 소리 한 적 없어--- 핫!

있어. 아니야--- 딱 한 번--- 그 사람한테.

좋아해요!

'잊을 수 없는 마녀의 노래'를 읽었는데---

다정하고 그러면서도 왠지 강해서--- 저는 너무 좋아요.

시즈마사 님?

그래.

 

우연이 아니야.

하느님이 만나게 해주신 거야.

그날 밤--- 나를 구원하도록.

하지만 약해질대로 약해진 나는 그런 건 기적이나 다름없는 꿈에 불과했다.

 

전 이제 카미야 가문의 딸이 아니라구요.

당신과는 사는 세계가 다른다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도망쳐버린 나를 당신은, 당신만은 보지 않기를 바랐어---

발견하지 않기를 바랐는데!

겁내지 마. 난 두려운 존재가 아니니까.

난 너를 더럽다곤 생각 안 해.

오히려 그 반대지.너는 너무나 순수하고 한결같아.

사실은 네가 그 파티에서 나한테 고백한 일을 계속 기억하고 있었어.

가면을 쓴 것처럼 거짓웃음만 건네는 사람들 사이에서 네가 한 말은 진심이었으니까.

--- 주저앉아버리고 싶을 때는 네가 해준 말이 나를 지탱해주었어.

그래서 소중히 여겨왔어.

넌 지금도 천사 같아.

너를 생각하면 나도 순수해질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아!

이런 밤에 잠들지 못해서 혼자 울지 말고,

너는 너답게 살면 되는 거야.

네--

약속--- 기적과 같은 꿈--- 노력하면 이루어질 약속.

 

저랑--- 만나주실 수 있어요?

나보다 아버지를 만나는 게 낫지 않겠어?

황제회에서 카미야 카즈히토를 만났다.

플라티나 제도를 만든 게 너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

선배님들은 모두 내게 이렇게 말하더군.

정말로 황제시절의 카즈히코 님 같다고.

아버지를 닮아서 나를 좋아하게 된 거 아닌가?

미워하는 아버지 대신에 그를 닮은 내게 사랑받고 싶었던 게 아니냐고?

네가 가장 나를 황제로서밖에 보지 않는 거 아니야?

 

아니, 이게 누구야?

학원은 요즘 어떻습니까? 시즈마사 님.

별 문제 없어.

역시 토구 가문의 후계자는 격이 다르시군요.

지금이 제일 행복할 때이니,

마음껏 활개쳐본 다음

사라지도록 해.

 

센리, 하이네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

어서 빨리--- 만나러 가고 싶어.

병이 다 나으실 때까지만 참으면 됩니다.

당신의 그림자가 대신 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건,

절대 지켜야 할 토구 가문의 비밀이니까.

 

증오스러워.

시즈마사도,

내가 가짜라는 걸 눈치도 못 채고 좋아한다고 하는 그 여자도.

상처입고 또 상처입어서 '시즈마사'를 미워하면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