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VD / 환상이 아니길 바라는 것일수록 환상이다.
디디가 비누와 함께 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비누를 숭상했기에 아버지 대신 비누를 선택해야 했던 디디의 슬픈 이야기!
비누와 의형제를 맺은 후, 나는 정말 달라졌어.
자, 우리나라 지도는 어떤 모양이죠?
토끼요~
혹시 다른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어린이?
그때 디디가 손을 번쩍 들었다.
호랑이의 모습입니다.
와~ 잘했어. 예전 같으면 토끼 밖에 생각을 못했을 거야.
하지만 나도 이제 조금씩 틀을 깨는 생각을---
흥! 우리나라 지도는 가슴이 무지 큰 여자 모양이야! 넌 아직 멀었어!
그러고 보니--- 역시 비누다!
나 같은 건 아직--- 어림도 없어!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따라다니며 가르침을 받아야지.
비누에 대한 나의 존경심은 날로 커져만 갔고, 우린 뭐든지 함께 행동했어.
디디야, 넌 왜--- 비누 눈치를 봐?
비누한테도 버림받을까 봐--- 겁내는 거야?
비누랑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의 얘기야.
우리는 주변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단짝이었어.
하지만 우리가 나타나면 모두들 외쳤지.
곽비누다! 곽비누, 곽비누.
나를 보는 인간은 하나도 없었어.
나도 주목받고 싶다!
그래서 난 소화기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지.
그제서야 사람들이 나를 보기 시작했어.
소화기는 빨간색이라 눈에 잘 띄잖아.
버스 탈 때, 학교 구내식당에서, 탕 속에 들어갈 때도 난 항상 소화기를 들고 다녔지.
그때부터 전세는 역전된 거야.
소화기다, 소화기, 소화기!
덕분에 예쁜 여자친구도 생기고, 난 진짜로 사랑에 빠졌어.
그런데 그 여자애가---
미안하지만 디디, 난 요새 비누랑 사귀고 있어.
난 여자애한테 울면서 매달렸어.
여자친구는 말했어.
비누를 향해 불타는 내 마음은 네 소화기로도 끌 수 없어, 알아? 라고.
난 비누한테 심술이 나서 며칠 동안 토라져 있었어.
그러자 비누는 그 여자애 한테로 날 데려갔어.
네가 뭔데 우정에 금가게 해. 응?
그러면서 소화기를 그 여자애에게 뿌려댔지.
누구도 우릴 갈라놓지 못해! 우린 피로 맺은 의형제!(사실은 침으로 맺은 의형제)
대단하지 않아?
비누는 나와의 우정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가슴이 큰 애를 차버린 거야.
(사실은 그 뒤로도 비누는 디디 몰래 그 여자애를 만났다)
무슨 일이 있어도 비누는 날 안 버려.
왜인 줄 알아?
비누는 신이니까!
신은 인간을 안 버려.
그러니까 난--- 비누 눈치 같은 거 안 봐.
비누야, 볼일 다 끝났으면 이제 그만 가자.
어머~ 누구야~? 설마 여친?
아니. 그냥-- - 룸메이트야.
그냥--- 룸메이트야.
비누는 민사장보다도--- 더 최악이야!
내가 그냥 룸메이트면--- 왜 예쁜 원피스를 입고 나오래!
손은 왜 잡아준 거야!
바보같이 난--- 사랑을 하게 되면 행복해질 줄 알았어!
터덜터덜--- 땀이가 걷는다.
비누가 기다리고 있다.
하나만 골라.
잠깐 사랑한 다음에 영원히 헤어지든가,
아니면, 헤어지지 않는 대신 사랑하지 않든가.
--- 왜 둘다 슬픈 결말이야?
사랑하면서--- 영원히 같이 있는 건 왜 안 돼?
아직--- 그 여자 아이를 못 잊어서 그래?
여자아이라니--- 누구 말하는 거야?
이마에--- 담뱃불로 표시를 했다는--- 그 아이!
누가 그래?--- 디디가 그래? 그건 디디가 다 지어낸 얘기야.
디디는--- 로맨스에 강하니까! 그런 얘기는 얼마든지 지어낼 수 있어!
그 아이 때문이 아니라면--- 대체 이유가 뭐야?
우리는 왜 안 돼?
비누가--- 환상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인간과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
비누가 환상인 걸 알게 되면--- 내가 떠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걱정 마, 비누야.
네가 환상이라고 해도 난 안 떠나.
사랑할 수 있을 거야.
인간과 환상도---
땀이야.
난--- 환상이 아니야.
나도 너처럼 환상을 봐!
비누한테도--- 환상이 보인다고?
환상을 보지 않고서 어떻게 그 많은 이야기들을 지어낼 수 있겠어?
환상을 본다는 건 그렇게 대단하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야.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 환상을 봐.
그럼--- 디디도?
그래, 디디도 .
그럼, 내가 지금 보고 있는 환상이--- 비누한테도 보여?
당연하지, 이건--- 네 환상이 아니라, 내거야.
내가 만든 환상을 네가 보고 있는 거라구.
이 바다--- 생각 안 나?
젖소와 범고래가---헤어졌던 곳이잖아---
인간의 상상력이라는 게--- 한계가 있어서---
같은 머리에서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이 비슷한 게 반복되고 그래.
땀이 넌 어때?
네가 보는 환상도 서로 비슷한 점들이 있지?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동물들은 말을 하고, 식물들은 뭔가를 뚫고 나와.
그리고 나는--- 동화속 주인공들이 겪었던 일들을 겪게 돼.
그게 바로 네 상상력의 한계라는 거야.
디디와 내가--- 엄청 따분했던 어느 날,
우린 그 아이를 처음 봤어.
그 아이는 미친 것처럼 날 사랑했어.
근데 멍청하게 그 아인 한참 후에야 자기가 환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야.
그 기분이 어땠을까?
비누야, 나--- 심장이 뛸 때마다 가슴이 꼭 그렇게 아파---
비누를 이렇게나 사랑하는데--- 난--- 세상에 존재조차 않다니---
그래서 떠난 거야---
네가 노래 부르는 모습이 왜 그 아이랑 그렇게 비슷할까---
어떻게 같은 숫자를 좋아하고, 환상을 본다는 사실까지--- 닮았을까.
이제 알겠어, 심땀?
넌--- 환상이란 말이야!
그 아이처럼!!
그만--- 그만해, 비누야--- 더 이상은 듣고 싶지 않아.
이건--- 그냥 꿈이야--- 슬프고--- 무서운 꿈---
왜--- 몰랐을까---
내가 정말로---
너무나도 간절히---
환상이 아니길 바랐던 것---
그건 바로--- 나 자신이었는데---
땀이야, 정신 차려!
대체 왜 그랬어?
갑자기 미친 거야, 너?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야!
땀이는 안 떠나!
그냥 같이 살 거야!
우리 셋이서!
친구처럼!
지금처럼
그냥--- 재미있게---
셋이서---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