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다이 / 하기나루


나 갑자기 떠나게 됐어! 보고 싶다. 지금 공항으로 나와! 이다이.
이다이! 이다이라면 그 애잖아! 안돼! 모두가 그 애를 만났기 때문이야--- 제희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애와 떨어진다면 제희가 예전으로 돌아올까? --- 그리고 문자를 삭제하는 제희 엄마.
공항에서 제희를 기다리는 다이.
바보같은 자식! 그래도--- 멀리 있어서 네게 다가갈 수 있는 꿈을 꾼다.
난--- 늘 너와 함께다. 은형의 일--- 미안하다. 너의 아픔에 묻어둘 수 있을지--- 난---
다이를 그렇게 떠나보낸 여름은 질식할 만큼 뜨거웠다.
그리고 예고도 없었던 다이의 부재는 은형의 죽음으로 비틀거리던 날 절망에 빠뜨렸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이별은 안녕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별이다.
다이, 다이-- 네가 필요해! 보고 싶어! 대체 어디 있는 거야? 대체 어디에---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지? 다이 네 말대로 세상이 엿같아!
그래서 난 네가 필요해! 네가 필요해! 돌아와---
나루에게 은형의 죽음을 알리기에 난 너무 어둠 속에 있었다.
나는 은형의 죽음보다 은형이가 죽으려 했던 아픔을 떠올리기 싫었다.
나루는 알고 있는 듯 언제부턴가 나를 피했다.
나는 은형의 죽음을 설명한다는 것이 벅차왔다.
은형의 죽음이 나의 전부를 장악하고 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다이에겐 쉽게 얘기 했던 것 같은데--- 네겐 말을 못하겠어.
속시원히 얘기해줘! 네가 기억하고 있는 은형일 나에게 얘기해달란 말야! 모든 것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는데---
나는 문득 나루와 나 사이에 공존하는 허전함이 우리 관계를 새롭게 묶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은형의 부재로 생긴 공간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고 있다.
나는 갈 길을 헤매일 때마다 다이네 집을 오곤 했다.
은형이의 자살일지를 쓰겠다는 나루. 이런 특이한 행동은 나루이기에 가능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형이의 상처를 알면 나루도 상처받지 않을까? 분명히 상처받을 것이다.
은형을 알아갈수록 상처가 되는 나루는
은형이에게 조금더 빨리 손을 건네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은형이 마지막으로 살아있던 날---
나는 세희와 만나서 은형일 기쁘게 할 모종의 음모를 짜고 있었다.
젠장! 마지막으로 살아있던 날이라니---
조금만 더 눈치가 빨랐다면 은형의 불행을 알 수 있었을 텐데---
아쉬운 것은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은형이와 함께 있어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린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하는 더 중요한 방법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이가 없는 학교는 나와 함께 죽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무기력한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그것이 다이 때문인지 은형이 때문인지 점점 알 수 없게 되었다.
다만, 절실하게 다이를 필요로 할 뿐.
말하고 싶다. 말하고 싶다.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이런 감정은 어떻게 추스려야 하는지---
어떻게 가슴 속에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건지.
엄마, 나 다이를 사랑해요.
이런 기분--- 죽을 것 같아요, 엄마.
달라질 감정이라면 이렇게 죽을 것 같지 않았을 거야. 너무 힘들어.
온통 나를 지배해.
그애가 없인 아무 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어.
왜 남자야!
이 세상 반이 여자인데, 남들 다하는 사랑인데,
아름답게 사랑할 수도 없고 축복받을 수도 없고 인정받을 수도 없는 그런 사랑을 하겠다고?
난 사랑의 종류를 택한 것이 아니야. 그저 한 사람을 사랑할 뿐이야.
다른 사람들이 이성을 보고 사랑을 느끼는 것과 같이, 난 그애에게 느낀 것뿐이야.
엄마, 이렇게 생각해봐. 엄마 아들은 오른손잡이 세상에 왼손잡이로 태어난 것뿐이라고.
이 세상 사람이 다 손가락질해도 엄마만 우릴 인정해주면 돼. 그게 최고의 축복이야.
살면서 별꼴 다 당해도 엄마가 이해해준다고 생각하면 헤쳐나갈 수 있어.
하지만 다 괜찮다고 해도 엄마가 반대하면 힘들 거야.
엄마에게서 뛰쳐 나왔다.
나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소중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다.
세상에 대해 나는 아직 미숙하고 어리숙한 존재였던 것이다.
외로움이 차갑게 가슴을 물들였다.
다이--- 넌--- 어디 있는 거니?
어느새 다이네 집 앞에 와 있었다.
나는 다이가 자기를 쉽게 찾아올 수 있도록 가르쳐준 방법으로 다이의 집으로 들어갔다.
체온 없는 다이의 냄새. 아득해져 버리는 다이의 모든 것들.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난 그 동안 너무 진지하게 살았어. 생각 따윈 접어두고 원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거야!
지금 이 순간, 나의 최대의 위로는 다이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
다이야, 사랑해--- 사랑해--- 돌아와---
너무나 익숙해진 다이의 방--- 나는 이내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달콤하고, 행복한 꿈--- 그런데 꿈이라면 너무 생생해--- 다이--- 꿈이 아니야---
다이의 느낌은 차가웠으나, 꿈결 같은 재회는 유연하게 지친 그리움을 쓰다듬었다.
매일 밤, 널 만지는 꿈을 꾸었어.
왜 자꾸 헤어져야 하는지--- 네가 없는 난--- 아무 것도 아니었어.
더 있을 수 없어서 가족들에게 말도 안 하고 떠나왔어.
그런데 도착하니, 네가 있더라고--- 그래도 달려온 보람이 있었어.
여기 와서 처음 만난 사람이 너니까. --- 가자!
어디를?
우리 둘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돌아오면서 내내 생각했어.
질리도록 오랫동안 같이 있고 싶다고.
귓가에 머문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 늘 바래왔던 말---
오늘 당장부터야.
다이 할머니께서 생전에 쓰시던 별채에서 막연한 동거를 시작한 다이와 제희.
우리의 짧은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눈을 뜨면 다이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같이 살게 된 다이의 모든 것이 내겐 새로운 여행지 같다.
아주 일상의 작은 일들조차 같이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완벽한 공범자!
우리는 너무 평화에 도취되어 있어
이러다가 길을 잃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이제 곧 빨간불이 켜질 거라는 예감 속에
우린 서로 이외에 모든 것을 닫아버렸다.
우리에게도 행복할 권리가 있는 걸까?
적어도 지금은
서글픔을 웃음으로 대치할 행복의 조건이 눈앞에 있다.
다이에겐 내가 길이고--- 내겐 다이가 길이 되어준다.
우리가 함께 하는 곳이면 그 길이 곧 우리의 길인 것이다.
어쩌지? 너의 너무 많은 것들을 갖는 게 두려워.
불안감은 짧은 행복의 절정을 더욱 실감나게 한다.
다이를 긍정적으로 끌어내려고 서로에게 칭찬하는 말을 하자고 제안하는 제희.
다이, 넌 보기보다 훨씬 따뜻한 사람이야.
제희, 너는--- 너무 뜨거워. 다가가기 두려울 정도야.
갑자기 진지해진 다이가 제희에게 주장한다.
우리--- 앞으로도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그런 사랑은 하지 말자.
저 사람들은 정말 사랑할 수밖에 없겠구나---
저런 사랑도 다 있구나--- 하는 그런 사랑을 하자.
이 순간---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느꼈을 때--- 난 모든 것을 여기서 멈춰버리고 싶었다.
가을 잠자리처럼 소박하게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경계 없이 스며드는 가을 냄새에 몸을 맡기고
그곳이 어디까지라도
너를 만나기 전까진 세상에 그렇게 놀라울 것도 외로울 것도 없었다.
너를 만나기 전까지 나의 삶은 잠든 것처럼 평온했다.
하지만 우린 사랑했고
어느 날--- 우리의 사랑은 사형당했다.
붉은 고추잠자리처럼--- 흐트러지는 너의 피---
사랑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너를 만나기 전까진 세상에 그렇게 놀라울 것도--- 외로울 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