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다이 / 은형
은형이 제희를 떠올린다.
제희는 날 어느 정도 좋아했을까?
나는--- 안녕이라고 말하고는 금새 다시 만나고 싶었어. 뭐든 함께 하고 싶었지.
잠이 들 때, 따뜻한 그 애의 눈을 생각하고는 가슴이 하늘처럼 부풀어 올랐어.
지금은 되돌릴 수 없는 감정--- 아픔만 남은 내 첫사랑---
사랑이란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첫사랑---
다이가 엄마의 병문안을 왔다.
엄마에게 인사를 드린다는 다이를 붙잡았다.
다이와 함께 엄마를 볼 자신이 없다.
--- 지금은 그렇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엄마는 알아버릴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을.
그만큼 나는 다이의 행동에 무방비 상태였고
내 감정을 차분하게 안으로 집어넣을 정도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만큼은, 널 제대로 소개해주고 싶어.
내게 너무나 소중한 분이거든.
그때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지금 사귀고 있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말할 거야.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우릴 비난해도
엄마가 인정해주시면--- 나는 그걸로 충분하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인정해줘도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한다면--- 나는 비극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게 있어 우리의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윤은 누나와 마주쳤다.
제희와 다이의 운명적인 만남에 원인을 제공했던 윤은.
다이가 윤은을 스친다.
윤은은 그 애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심장이 뛰었다.
그 애는 언제나 무시했다.
아니--- 그보다 윤은이 더욱 불쾌했던 건
이상한 힘으로 제희를 휘두르는 것과 그 앞에 자신은 속수무책이라는 것.
그리고 그 애의 정의롭지 못한 시선.
무엇보다 은형에겐 간접적인 피의자이고
정말--- 어느 것 하나 끔찍하지 않은 게 없었다.
이건 천적이야---
다이와 함께 버스를 기다린다.
세 대를 그냥 보냈다. 붙드는 듯한 다이가 중얼거렸다.
너, 이런 시 들어봤니?
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짧지만 강렬하고 군더더기없는 호소력이다.
버스를 탔다. 다이가 쫓아온다. 내려서 다이에게로 뛰었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오늘은--- 특별하게 잊을 수 없는 날일지도 모른다.
너, 나 보고 싶어서 온 거지?
그래, 나는--- 항상 너에게 날 두고 가는 것 같아.
그런 기분 아니?
평생 조금씩 나눠서 쓸 사랑을--- 지금 한꺼번에 다 써버리는 느낌---우린 아직 어린데---
우린 사랑에 미쳤다! 우린 청춘에 미쳤다!
그래서 외친다! 우릴 내버려 둬! 우릴 내버려 두라구!
바다에 가자. 바다가 정말 미치도록 보고 싶다.
우린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한낮을 맞고 있었다.
다이와 제희, 하기나루와 은형이가 땡땡이 치고 바다에 섰다.
딱히 어울려보이지 않지만 묘하게 섞이는 아이들.
은형이가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
어쩐 일인지 계속 들어가기만 한다.
안 돼, 은형아!
나루가 뛰어들고, 제희를 막고 일어서는 다이가 중얼거린다.
그럴 수는 없지.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은형이를 걸쳐맨 다이의 표정이 없다.
하지마! 불쾌해. 인공호흡을 하려는 제희의 손을 다이가 잡는다.
사랑은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라지만 다이의 사랑은 더 절실하다.
너, 내가 널 방해했다고 생각하냐?
그냥 내버려뒀으면 눈물나게 고마웠을 텐데---
착각하지 마! 널 위한 게 아니라 제희를 위해서였으니까.
나는 은형이와 우리가 벌였던 작은 소동이
낯선 객지에서 뜨거운 동지애로 새롭게 솟아남을 느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돼!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돼!
오늘 고마웠다.
집어쳐.
다이는 행동하지만 그의 생각은 허무주의에 빠져 있다.
행동적인 니힐리즘.
어떤 이유의 행동이든 결론은 허무한 무의미다.
우리가 어디에 와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런 생각조차 무의미하게 만드는 나의 다이.
나는--- 그런 다이에게 끌려갈 뿐.
언젠가 죽는 날이 온다면 길에서 죽을 거야.
나에게 길은 영혼과도 통해.
갑자기 죽음을 얘기하지 마. 그렇지 않아도 난 다이라는 네 이름이 걸려.
걱정 마, 널 놔두고 죽을 리는 없으니까.
그렇지만 네 이름의 의미 때문에 울고 있는 내 마음을 다이 너는 알고 있니?
나의 사람은 그 수시로 메마른 다이의 충동 속에 길을 잃고 헤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