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의 숲
예전에 열심히 빌려보고 한참 기다렸던 만화가 영화로 만들어졌네.
그럴 예정이라는 소식까지만 접했었는데--- 반갑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 보기는 힘들겠지.
돈이 없어서 문화적으로 빈약한 동네.
아이들이랑 같이 보면 좋을 텐데---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과 함께 읽으려고 빌렸던 만화였는데,
일본만화이다 보니 좀 민망한 장면들도 있어서 서둘러 반납했던 기억이 있다.
바르샤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쇼팽콩쿠르를 준비하는 카이.
예선 연주를 기다리면서 다른 참가자들의 연주를 지켜본다.
카이는 콩쿠르가 끝나면 자기 나라로 돌아가겠지?
음--- 이곳을 떠나긴 하겠지만, 일본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걸세.
그것이 카이 보스의 희망이야.
나도 카이를 자유롭게 보내주고 싶어.
저 넓은 하늘로.
카이에게 세계적인 피아노의 길을 열게 해주었던 장자크 세로는
카이에게 피아노를 치는 자유를 주고 싶어한다.
나는
카이의 피아노 소리가 좋다.
특히나 이렇게 깊은 밤---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한 게 아닌
카이의 레슨을
졸면서 듣는 게 좋다.
그 피아노 소리는 젊고 생기가 넘친다.
길고 긴 피아니스트의 인생 속에서
유일하게 이 시절뿐인
반짝이는 피아노.
카이의 스승인 아지노 소우스케는 바르샤바로 떠나기 전, 카이의 엄마를 만나고, 카이의 엄마는 과거에 카이의 젖줄과도 같았던 불타버렸던 피아노에서 나온 조각 하나를 부적처럼 건넨다. 카이 피아노의 생명이었고 유일한 안식처였던 피아노의 조각은 분명 카이에게 힘을 줄 것이다.
나의 유일한 벗인 아마미야 슈우헤이 차례다.
굉장해, 슈우헤이--
이건,
이건 너의 노력의 결과인가?
하지만 그것뿐만은 아니야.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투명하고 반짝반짝한 소리의 조각들이
내게 속삭인다.
슈우헤이, 나 지금 깨달았어.
네가 치는 피아노가
다른 누구의 피아노보다
나를 설레게 해.
세상의 어떤 연주보다.
나는 이렇게 설레는데
너는 늘 나에게서 멀어지려 한다.
나는 너와 함께 피아노를 치고 싶은데
너는 내 피아노를 듣고 멀리 도망가서는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안타깝고
너와 함께 지냈던 어린 시절의 피아노가 그립다.
슈우헤이가 녹턴 C단조 작품 48-1을 친다.
슈우헤이는 가장 비극적인 작품을 골랐다.
그리스도의 수난을 표현한 C단조의 고뇌에 가득한
녹턴 13번째 작품이다.
나는
이 녹턴을칠 때,
그리스도의 수난도
폴란드인의 고뇌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단 한 사람 떠오르는 건
이찌노세 카이!
바로 너야!
카이,
이건 나의 고뇌다.
어렸을 때
너와의 만남---
너의 피아노 소리를 도저히---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 버렸던 나의 고뇌.
널 이기지 못하면 나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에서
도망칠 수 없었던 고뇌.
듣고 있니, 카이?
이건 나의 노래야!
내마음의 노래야!
내가 내 손으로 엄청난 적을 만들고 만거라구!
카이에 대한 슈우헤이의 절망스런 열등감이 난처하다.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그럴 수밖에 없는 한계.
그것이 천재와 영재의 차이라면 할 말이 없다.
지금까지 피아노의 숲을 쭈욱 읽으면서
나 스스로도 마음 한 구석이 답답했던 것은
천재라는 벽을 넘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좌절하는 영재들의 꿈이다.
그래도 나는 절대적으로 믿는다.
마지막까지 놓지만 않는다면 영재들의 한계는 극복될 수 있을거라고.
천재에 가까이 가려 하지 말고
그들만의 재주를 내보이는 거다.
쇼팽콩쿠르를 보면서
[노다메칸타빌레]의 치아키가 심혈을 기울이던 지휘자콩쿠르가 생각났다.
정말로 멋지고 벅찬 장면이었는데---
피아노의 숲에서 시작해서 금색의 코르다로,
그리고 노다메칸타빌레로 이어졌던 클래식이야기는 상당히 감동적이었다.
만화든, 애니든, 드라마든, 영화든지 할 것 없이 제각각 주는 재미는 다르겠지만
원작이 갖는 이야기의 힘은 어떤 식으로든 감동 받을 수 있다.
[피아노의 숲] 영화만 보면 다 보는 건데, 어떻게 볼까.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