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미 프린세스 6
족장의 아들과 사랑을 나눈 켈리는 남자가 아닌, 그를 보면서 경악한다.
내가 지금--- 이 현실감 없는 광경은 뭐지?
켈리, 이게 우리 일족의 성인식입니다.
우리 일족은 여아로 태어나지 않아요.
대신 일정 수의 남자들이 성인이 되어 외부 여성과 첫관계를 갖게 되면 이렇게 여성으로 전환됩니다.
우리 부족이 은신해 살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마--- 말도 안 돼.
말해 봐요. 왜 날 안았어?
혹 당신이 여자가 되는데 내가 필요했어?
아니라는 거 알잖아요.
그들은 어머니가 될 사람들이야.
이렇게 즉흥적으로 성을 결정하지 않아요.
그저 이 모습이, 당신에게 보여 줄 수 있는 내 사랑의 전부라서--- 그랬어요.
이건, 너무 잔혹해.
이런 기억을 가져 버리면 다른 사랑을 어떻게 해?
--- 상관 없대도--- 같이--- 못 가는 거지?
네. 켈리, 나중에 제가 다른 이와 낳게 될 아이 중 하나는 당신의 아이입니다.
일종의 생존 유지 장치겠지요.
폐쇄적인 근친혼이 되풀이 되면 제대로 된 아이가 태어날 수 없으니,
첫 상대였던 여성의 유전자가 그대로 되물림 되는 아이가 태어나게 됩니다.
새 피의 수혈인 셈이죠.
그 아이는 당신이 우리 일족과 저에게 주는 귀한 선물이기도 합니다.
이상하지만--- 잘 부탁해.
네. 미안해요, 켈리.
미안해요.
하지만 나 역시 당신이 말한 대로의 형벌로 이제 물기 없이 버석한 영혼으로,
좋은 여자도, 아내도, 어머니도 아닌 채로 남은 생을 살겠죠.
그래도 단 한 번에 눈 멀어 반짝거렸던 이 한 순간을 후회 안 해요.
나중에 니콜이 제드에게 향한 마음의 진실을 알 수 없어서 샤히에게 고민을 털어 놓을 때, 샤히가 니콜에게 하는 말도 의미심장하다.
저희는 남자인가, 여자인가가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로만 나뉠 뿐입니다.
그 외의 구분은 별 의미가 없으니까요.
나는 이 대목에서 갑자기 김세영 작가의 사랑관과 성을 바라보는 자세가 궁금해졌다.
작가는 어떤 가치관을 지니고 있기에,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었을까?
결국 불가피한 상황만 아니라면, 성인이 되어서 자의로 성결정력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인데---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듯 보이면서도, 근본적인 모순이 있다.
인간이란 게 사회가 요구하는 성을 더 취하려 할 텐데, 그렇게 되면 성불균형이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자신이 선택할 사랑을 위해서, 다른 성을 먼저 택해야 한다는 뭐, 그런 모순.
물론 내가 성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상식을 뒤엎는 매력도 있긴 하지만---
나는 헤루투족으로 태어났다면, 성인식 때 분명 남자랑 함께 있을 거야. ㅋㅋ.
어머니란 위치는 위대하지만, 역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니까---
어찌 됐건, 죽음으로 자신의 연인(샤히의 어머니)을 살리려는 켈리(제드의 어머니)의 행동에
왕세자(제드의 아버지)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용서치 않겠어.
내게 필요치 않은 감정을 만들어 냈고, 느끼게 했고,
끝내는 버림 받게 만들어 날 부숴뜨린, 그대를 용서치 않겠다.
그대에게 감사도 한다.
난 곧 왕이 되고,
그 왕에겐 부숴지는 심장 따윈 필요치 않아.
덕분에 알게 됐고,
알게 됐으니 처리할 수도 있게 됐다.
해서 이 순간부터
그대는
갖고 싶은 것일 뿐이다.
성으로 돌아간 왕세자는 거리낌없이 다른 여인을 안았고, 후에 그 여인은 왕비가 될 켈리보다 빨리 왕의 첫 아들을 낳았다.(그가 지금의 왕세자인, 데릭) 그리고 왕은 그녀를 사랑했으나 용서치는 않아서, 그녀의 아이들인 제드와 레이니공주에게 냉랭하게 구는 걸로 보복을 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사랑한 켈리는 아이들을 위해 독살을 가장한 자살을 했다는 이야기.
헤루투족장을 만나고 에린국을 찾은 제드와 니콜.
제드는 그리휜왕자에게 니콜과 파혼하기를 제안한다.
더 이상 가는 것은 곡예에 불과하니,
이쯤에서 정리하도록 합시다.
이 말을 들은 레이니 공주는 제드 오빠와 니콜의 사랑을 이어주기 위해 애를 쓰고,
니콜은 용기를 내어 제드의 품에 안긴다.
오라버니가 뭐라고 했건,
그건 진심이 아닐 테니 잊어요.
그러니 쓸데 없는 생각 따윈 버리고 직접 움직여요.
지금부터 당신의 눈은 보지 않을 거야.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니콜, 그만 둬.
왜?
지금이라면 멈춰 줄 테니까.
싫어.
이젠 당신 뜻대로 끌려다니지 않을 거야.
당신 말대로 어차피 시간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닐 일이라면
이것도 아무 것도 아닌 거잖아.
당신에게도.
나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