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이랑

천일야화 4

2007. 11. 27. 18:32

 

형님도 참--- 부주의하시군.

한낱 궁중시인에게 이런 위험한 물건을 들려 보내다니---

그만큼 자네를 믿고 있다는 건가---

 

그 사람이 샤리야르의 동생인 샤자만---

샤리야르 님의 과거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한 마디도 못하고 말았어.

샤리야르 님을 그렇게 두고 온 게 마음에 걸린다---

뭐야? 저건--- 저 사람은--- 파티마?

 

이 그림은 분명--- 그 방에서 본---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보게.

서쪽 복도 끝에 있는 초상화--- 그것과 똑같은 그림을 샤리야르 님의 방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초상화 속의 인물이 어떤 분인지 알아도 되겠습니까?

--- 우리 어머니의 초상화야. 돌아가신 지 15년도 넘었지---

얼굴색이 좋지 않군. 어젯밤에 유령이라도 본 건가?

어, 어머님은--- 어떤 분이셨죠?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무척 아름다운 분이셨다는 건 기억해---

그런 어머니가 어느 날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지. 그때 나는 아직 어려서 어머니의 죽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코흘리개였을 뿐이었지만--- 형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던 것 같아.

형은 그날 이후로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렸으니까.

그럼--- 어머님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내가 왜 그런 것까지 너에게 말해야 하지?

정 알고 싶으면 형에게 직접 물어보지 그래?

 

샤리야르님은--- 마음의 병을 앓고 계십니다.

마음의 병---? 매일 밤 한 명씩 처녀를 죽이고 있다는 그것 말이냐?

--- 그렇습니다.

너는 지금 우리 형이 미쳤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파티마 왕비가 떠나 이후로---

샤리야르 님은 끝없이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멈추지 않으면 언젠간---!

묻는 말에 대답해! 샤리야르가 미쳤냐고 물었다.

---

흠---대답할 수 없겠지--- 어제 네가 가져온 편지에는 서방 프랑크의 재침입이 우려되니 군사를 빌려달라고 적혀 있더군. 그쪽 동향은 나도 빠짐없이 파악하고 있다. 십자군이 다시 쳐들어온다는 건 거짓말이지? 형은 술탄의 자리가 위태로운 거다, 그렇지?

 

샤리야르님은---  제가 치유해드릴 겁니다. 반드시!

샤리야르님이 그렇게 된 건---왕비인 파티마의 부정이 원인이라고 들었습니다.

사람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으면,

정작 그 상처 자체가 아닌 다른 대상에 그 저주를 퍼붓기도 합니다.

너무나도 깊은 상처이기에 그 상처를 자신의 눈으로 직접 마주볼 수조차 없기 때문이죠.

그렇게 외면당한 상처는 치유되지 않은 채, 숨겨지고 방치되어 썩어갑니다.

결국 그 상처로 죽음에 이르게 되기도 하죠.

그렇지만, 한 여자에 대한 배신감과 복수심이

여성 전체로 확장되는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샤리야르님은 보다 뿌리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파티마 왕비는 그저 그 상처를 드러내게 만든 동기에 불과하죠.

샤리야르님이 가진 상처의 정체---

그것은 여성에 대한 가치관을 심어주는 근원적인 존재인---

어린 시절의 어머니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보기와는 달리 무서운 말을 서슴없이 하는 녀석이군.

좋다, 말해주지--- 15년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래,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설명이 돼.

숨겨져 있던 상처는 찾아냈어--- 이제 남은 건 상처를 치료하는 것뿐이야!

더 늦기 전에---

 

샤리야르의 동생인 샤자만에게서 15년 전,

어린 샤리야르가 부정한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세하라는

급히 바그다드로 가지만 광폭해진 샤리야르는 침대에 묶인 채 침통해 있었다.

 

세---하라.

무사히 다녀왔구나.

이거--- 풀어줘--- 제길---

세하라---

네?

이야기를--- 들려줘.

 

먼저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청하는 샤리야르.

그는 세하라의 이야기로 자신의 아픔이 치유되어감을 느끼는 것일까?

영혼의 안정감!

 

저는 어린 시절 자기 아버지를 존경하는 아이들이 가장 부러웠어요.

세상을 살아갈 지혜를 주고 본보기가 되어줄 그런 존재를 간절히 원했었죠.

전 그런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책 속으로 빠져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부러워마지 않았던--- 아버지를 존경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해드리죠.

 

네 번째 이야기 [엄마와 나무꾼]

 

엄마---!

샤리야르?

꿈에--- 엄마가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가버렸어.

엄마는 아무데도 안 가지?

그럼, 엄마는 샤리야르랑 평생 같이 살 거야.

정말이지?

 

어디로 가는 거야?

거짓말쟁이--- 안 떠난다고 약속했으면서.

샤리야르--- 이건---

몰라. 아빠도 화 많이 났어.

뭐?

(짜악!) 왕비의 체면도 잊고! 남편과 자식들도 버리고---

고작 저런 놈과 눈이 맞아서--- 목을 쳐라.

진짜야? 죽은 거야? 왜? 나 때문에?

아니야--- 난 그저 엄마가 가버리는 게 싫어서---

나 때문에 엄마가 죽었어?

내게 거짓말을 하긴 했지만--- 죽게 될 줄은 몰랐어, 정말이야.

내가 엄마를 죽였어? 내가? 엄마를?

그때, 아버지는 말했어--- 아니, 말해줬어---

잘했다, 샤리야르--- 지아비를 속인 더러운 여자는 죽어야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마치 구원이라도 얻은 듯이 편안해졌어.

 

가엾게도--- 그렇게 상처를 덮어왔었군요---

(안아주며)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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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번째 이야기 [엄마와 나무꾼]은,

'선녀와 나무꾼'이야기를 상당히 많이 비틀어버린 이야기여서 당황했다.

왜? 선녀가 부정한 여인으로 설정이 된 것일까?

사랑을 위해 왕비라는 자리와 자식을 버린 샤리야르의 어머니와

나무꾼이 훔쳐서 묶어버린 자신의 사랑과 인생을 보상 받고 싶어 했던

선녀의 행복 찾기는 달라보인다.

아무리 '사랑을 위해서--'라는 공통분모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사랑과 행복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다만, 엄마의 부재를 두려워하는 아들의 간절한 마음은 같은 선상에 있다.

작가는 그것을 말하고 싶었겠지.

 

세계 대확포 설화 (전진석)

새삼 웬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반응을 보이신 독자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세하라가 어떻게 우리나라의 전래동화를 알고 있는 걸까요?

사실 '선녀와 나무꾼'은 호주를 제외한 전 세계에 퍼져있는 '세계 대확포 설화' 중 하나입니다.

유럽문화권에는 '백조처녀설화'로 전해지고 있는 이 이야기는 시베리아의 몽고인의 전설, '조녀설화'에서 비롯해서 중국으로 전해질 때는 도교의 영향을 받아 '조녀'가 '선녀'로 바뀌게 됩니다.

세계 대확포 설화의 유명한 예를 들자면, '노아의 홍수'나 '콩쥐팥쥐'를 들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걸 몰라서 신데렐라돠 콩쥐팥쥐의 표절 의혹을 품었었죠.^^;

세계 대확포 설화는 세계 문화의 교류와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적 역사적 근거가 됩니다.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이 세계 대확포 설화를 근거로 특정 종교의 정통성을 의심하거나, 다른 나라에 영향을 준 자국의 문화적, 역사적 우월성을 증명하는 방향으로 접근하곤 합니다.

한국인이 흔히 가지는 주변국에 대한 문화적 우월감과 열등감은 큰 눈으로 보면 하나의 커다란 흐름에 불과한 것인데 말입니다.